여고괴담 세번째이야기 여우계단

 

※ 스포일러 있음

 

 

 여고괴담 시리즈는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그중에서도 특정한 소재를 주제로 이야기가 달라진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친구사이의 열등감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가족도 안 되는데 친한 친구라고 그게 가능할까?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는 없지만 내 인생은 혼자서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은 그게 뭐가 됐던 치워야 내가 한 발짝 더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진성에게는 그게 친한 친구 소희였다. 

 

 진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소희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소희를 이기고 싶었다. 그쯤 여우계단의 효과를 본 혜주가 진성의 앞에 나타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한 번이라도 소희를 이겨 콩쿨을 나가고 싶었던 것이지만 소원의 대가는 크다. 진성은 대상을 품에 안았지만 소희를 잃고 모든 관계를 잃었다. 진성의 서사만 따라가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아무리 나아가도 내 친구가 내 걸음보다 훨씬 빠르니 앞지를 수 없는 슬픔은 나도 잘 안다. 특히나 한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니 더 그렇겠지. 그렇지만 가해자는 가해자다.

 

 나도 진성이만큼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표현하면 내가 더 비참하고 쓰레기 같아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겨내는 게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 속도대로 걸어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거 하나 얻자고 잃은 게 큰데 그래도 갖고 싶을까? 진성이도 마지막에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려달라고 말하지만 후회가 너무 늦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진성이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내 열등감을 완전히 비워낼 수 있게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롭다는 생각을 하세요? 이 세상에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 그럴 땐 친구나 가족에게 먼저 사랑을 표현해보는 것 어떨까요?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사랑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일 겁니다. 진실한 사랑은 반드시 상대에게서 배가 되어 돌아온다고 하죠. 마음을 주고도 받지 못하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요? 사랑을 주고도 무시당한다면 그땐 차라리 죽어야죠. 살아서 뭐합니까?'

 

 소희가 죽은 뒤 혜주가 듣던 라디오에서 나오던 멘트다. 이건 진성에게 사랑을 받지 못 한 소희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소희는 진성을 사랑했다. 진성만 있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었는데 진성은 아니었다. 살갑게 대하는 소희를 질투했다. 둘의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고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친한 친구를 넘어 사랑하던 친구에게 배신받은 기분은 어떨까? 소희의 죽음이 의아하기는 했지만 저 멘트를 듣고 나니 이해가 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버림받았으니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했겠지... 솔직히 죽은 장면은 웃겼다. 마지막까지도 발레 자세를 하고 죽다니... 발레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는 했지만 소희의 마음속에는 발레를 하고 싶다는 열망도 자리 잡은 것을 표현했던 걸까? 귀신이 되어서도 발레를 하며 돌아다닌 것을 보면 맞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냥 소희만 우습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진성과 소희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지만 인상 깊었던 캐릭터가 있다. 뚱뚱보 엄혜주. 진성에게 여우계단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혜주는 소희를 동경을 넘어 광적으로 집착했다. 죽은 뒤에는 여우계단에 올라 소희를 돌려달라고 한다. 그로 인해 소희의 영혼이 혜주에게 붙게 된다. 소희는 혜주에게 빙의를 하기도 하고 혼자 독단적으로 다니기도 하는데 독단적으로 다닐 수 있으면 혜주를 왜 넣었나 싶다. 다른 의미지만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소희와 같아 빙의를 했다는 걸로 이해가 가능하지만 음... 딱히...? 굳이 그래야 하나 싶었다. 미술실의 공포를 같이 넣고 싶었다 이런 느낌이 더 강해서... 그냥 무서움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이렇게 밖에 해석이 안된다. 그래도 본체의 연기는 정말 대박이었다. <미저리> 초반 주인공의 눈빛을 보자마자 이건 미쳤다 미저리 그 자체다 느꼈던 게 떠올랐다. 엄혜주의 눈빛에는 광기가 있었다.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너무 거슬렸을 캐릭터를 살려냈다. 누가 캐스팅했는지 몰라도 정말... 잘 캐스팅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다른 영화들도 다를 게 없으니... 내 기준 정말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혜주와 진성이가 하늘에서는 사이좋게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쓰다 보니까 블랙스완이 생각나는데... 어디다 끼워 넣어야 할지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