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

※ 스포일러 있음

 

 

 

 어릴적 흰 소복을 입은 여성이 티비에서 기어 나오거나 우물에서 올라오는 패러디를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링>하면 사다코, 티비, 우물 정도는 알 정도로 정말 유명한 작품이라 기대를 안고 보게 되었다.

 

 

 

 “어떤 애가 펜션에서 녹화한 비디오를 집에 와서 돌려보는데 무서운 여자가 나왔대. 근데 그 사람이 갑자기 ‘너는 일주일 후에 죽는다’고 얘기 하더니 바로 전화가 걸려와서는 ‘봤지?’라고 말을 하더래. 그리고 그 애는 정확히 일주일 뒤 그 시간에 죽었대.”

 

 기자인 레이코가 그 괴담을 파헤치고 저주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다. ‘퇴마’의 개념이 아닌 저주를 풀어내는 것이 중점이어서 좋았다. 레이코가 비디오를 보고 일주일이 된 날, 사다코의 시체를 찾기 위해 우물에서 물을 퍼내며 계속 밖을 쳐다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날은 어두워져서 자신이 비디오를 본 시간에 가까워져 초조해지는 마음이 느껴졌다. 괴담에서는 사다코가 티비를 통해 나오기 때문에 티비가 없는 그 장소에서는 어떻게 사다코가 등장할지 기대하며 봤다. 자신이 묻혀있던 우물에서 찐 사다코가 기어 나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레이코는 사다코의 시체를 찾아냈기 때문일까, 저주를 피해 갔다.

 

 레이코가 우물에서 긴 머리카락을 찾아내고 사다코가 스르륵 올라왔을 때는 진짜 안 죽고 그 썩은 물에서 살아있었나? 당황했는데 머리카락만 남은 백골사체가 올라온 거라 슬펐다.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길 바랐구나, 왜 여기저기 저주를 뿌리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레이코 같은 사람이 나타나길 바란 건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까지 사다코가 우물을 기어 올라오거나 티비에서 나오는 장면이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2차 창작인가? 비디오에서 본 사다코는 우물에서 손밖에 안 보였는데?라고 생각했을 때 사다코가 기다렸다는 듯 레이코와 같이 자신을 찾아준 레이코의 전남편을 습격한다. 이 장면을 보기 전까지는 뭔가 심심하지만 괴담을 파헤치는 게 나쁘지 않았다고 훈훈한 마음으로 끝내려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레이코의 전남편도 기껏 도와줬는데 죽음을 당해서 나보다 더 놀랐겠지…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다코를 보고 있자니 누군가 한국 공포영화와 일본 공포영화의 차이점을 분석한 게 생각났다. 한국 귀신들은 대부분 일련의 사건으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 ‘한’을 품고 있다. 그 한을 누군가 풀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히 저승으로 돌아가는데 일본은 ‘원’의 개념이라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습격하고 다닌다. 사다코가 딱 그 케이스였다. 사다코의 인성 머리는 일본 귀신을 대표하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사다코에게 당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얼굴에 모든 구멍을 다 열고 죽은 게 사다코를 더 열 받게 한 건 아닌가. 사다코가 생각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눈 하나 쳐다봤다고 그렇게 이상하게 놀랄 일인가…? 나 같으면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렇게 무서우면 눈을 감아야지 왜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걸까?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더 죽이고 다닌 거라면 약간은 이해가 간다.

 

 레이코가 죽지 않은 이유도 시체를 찾아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본 비디오를 보고, 전남편에게 비디오 카피본을 보여줘서였다. 행운의 편지마냥 나의 저주를 남에게 떠넘기는 수법이 제법 웃겼다. 레이코의 아들도 그 비디오를 봤고 제 아버지에게 레이코의 아들을 위한 일이라며 비디오를 들고 찾아가며 영화가 끝난다. 어… 그러니까 제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빠에게 저주를 넘기는 것 같은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내 생각이 틀린 거였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ㅎ 다들 인성 뭐야…?? 저주를 풀기 위해 아들을 내팽개치고 다닐 때는 언제고 이게 뭔가ㅠ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한 캐릭터들이다.

 

 그들의 인성 파탄에 당황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론 재밌었다. 근데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못했다 ㅋㅋㅋㅋㅋㅋ 깊고 심각한 얘기를 할 때는 웃음이 났고 감정 없이 내뱉는 느낌이 강해서 나 혼자 감정을 재정리하며 봤다. 그래도 좋았어…. 왜 유명한 영화인지 이해가 가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