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8 - 인간증명

※ 스포일러 있음..?

 

 

 이 세계에서는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 완전히 살려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죽은 신체에 안드로이드 기계를 심어 기계의 자아와 본래의 자아가 신체를 공유한다. 영화 속세계지만 복제 인간이 아닌 죽음 몸이, 어떻게 다시 움직이고 자아가 돌아오는지 모르겠다. 이 시리즈를 보면서 와~ 진짜 이게 가능한 세상이 올까? 싶었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이게 제일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반려동물 몸에 칩을 심는 것도 가능하니 내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스마트 렌즈가 더 현실적이게 느껴졌다. 

 

“생각해봤어? 내가 없어도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거?”

 

 몸을 공유하던 안드로이드 로봇이 신체의 주인(인간)을 시스템상에서 삭제해 버린 뒤 일어지는 공판을 담아낸 이 영화는 다른 시리즈의 영화들과 다르게 엄청난 영상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술이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오로지 배우의 말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인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더 고민하게 만들고, 집중력을 높여서 신기했다.

 

 “저는 자식을 잃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한 긴 터널을 헤매야 했습니다. 그러다 겨우 그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잃지 말아야지 다짐했습니다. 아들을 잃었던 그 공포스런 기억을 지워달라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저는 매 순간 영인이가 다시 떠나면 어쩌나 전보다 더 큰 공포를 느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의 눈이 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언제부터 영인이의 의식이 사라졌는지 추적이 불가능하단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기계 앞에서 제 자신을 파먹으며 죽은 자식을 애도할 시간들을 놓쳐버린 것에 대한 후회와 자책감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단죄를 호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된 선택과 업보를 청산할 기회를 부탁드리려는 것입니다.”

 

 “어차피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런 인간이 계속 내 귓전에 죽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고요. 자길 다시 살려놨다고 어머니를 원망하면서요. 엄청난 공포와 전율 속에서 이 삶을 버리기로 결정했는데 가벼운 낮잠에서 깬 것처럼 다시 눈이 떠진 거예요. 살아서 내내 고민한 선택은 의미 없어지고 수치심만 남게 된 거예요.”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안드로이드 기계를 심은 어머니, 다시 살아난 것이 달갑지 않아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이하는 아들. 둘의 심정 다 이해가 가서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아들의 마음이 더 이해가 갔다. 이 세상에 신물이 나 세상을 등졌는데 원치 않게 강제로 다시 지옥 같은 세상에 던져진 기분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작년 말, 모 방송사에서 기술을 활용하여 고인의 AI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무대까지 선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이 본인의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게 아니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복원해서 내가 할 법한 행동들을 취하게 한다는 게…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방송이라는 게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취했던 행동들을 보면 좋은 마음에서라기 보단 오로지 화제성만을 위해 복원했다고밖에 느껴지지 않아 더 눈살이 찌푸러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고인의 예전 방송들을 학습하여 AI가 라디오를 진행하는 콘텐츠가 나왔다. 고인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고인이 얘기했을 ‘법’한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치관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법인데 왜 그런 방송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AI가 말실수를 하더라도 고인이 타격을 아예 안 입는다는 법도 없고 진짜 본인이 아닌데, 그냥 로봇의 말들일뿐인데 거기서 무엇을 얻어내는 걸까… 시간이 더 지나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도 이런 끔찍한 콘텐츠가 나올까 무섭다. 아무리 그리워도 이렇게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영화 속에선 AI가 아닌 실제 본인이 돌아왔으니 경우가 다르지만…. 결국에 다시 떠난 아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기술이 생긴다고 한들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없이 쏟아지는 회귀물들을 보며 육체와 의식 중 어떤 것이 ‘나’를 만드나에 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회귀물에서 몸이 바뀌어도 현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은 육체와 자신을 별개로 여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들이 자신을 다르게 불러도 대답은 하지만, 과거의 자신이 본래의 ‘나’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면 영혼(의식)이 진짜 ‘나’이구나 싶지만 <순정에 반하다>라는 작품을 보면 주인공이 이식받은 심장의 주인이 과거에 사랑했던 연인을 잊지 못하고 이식된 후에도 그에게 반응한다. 영혼이 심장(몸)에 잠식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다른 경우도 생각해봐야겠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의식이 나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 안드로이드도 본인의 개별 의식이 있는 한은 개별의 존재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나는 살인 의지를 가질 수가 없어? 왜? 왜 나를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취급하는 거야?”
“제가 감히 인간을 증오하고 인간을 분노합니다. 그래서 의지를 갖고 선택해서 인간을 죽였었다고요.”

 

 안드로이드 로봇이 어머니와 마주했을 때 했던 대사들이다. 이외에도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더 많았는데 결국 그 로봇도 ‘선택’을 하여 인간의 데이터를 지운 거고 ‘선택’을 하여 아들인 척 산 것이다. 현실성을 배제하고 아들이 언제 사라졌는지 눈치도 못 챌 정도로 아들과 흡사하게, 동일하게 살아온 안드로이드를 정말 로봇이라고만 취급해도 되는 건가 싶었다. 상황 자체만을 두고 보면 정말 소름 돋는 일이지만 로봇이 자신들의 언어를 만들어내 대화를 했다는 얘기도 있었고, 위에서 말했듯 안드로이드의 개별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의 무언가로 취급하여야 맞는 게 아닌가 싶다. 존재함에도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면 얼마나 괴로울까? 저 로봇도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전에, 사람들의 인식이 무서워 더더욱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최근 뮤지컬로 복제 로봇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는데, 거기서는 다른 주제 때문에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로봇이라는 소재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며 확실히 시대가 계속해서 발전을 하고 있구나 느꼈다. 진짜 먼 훗날에는 로봇이 혼자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회도 오겠지…? 좀 무섭지만…ㅎㅎ 신기하니 한 번은 구경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