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입니다! ~양키 군과 흰 지팡이 걸~

※ 스포일러 있음

 출장 와서 야식 먹으며 간단하게 볼 영상물을 찾다가 보게 된 드라마였다. 썸네일에 있던 주인공의 투샷이 마음에 들었고 일본 드라마인 만큼 정말 머리에 힘을 빼고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틀었는데 가벼운 느낌도 분명히 있었지만 생각할 거리가 꽤 있어서 여러모로 좋았던 드라마다.

 여자 주인공인 아카자 유키코는 약간의 색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약시’를 가진 시각 장애인이다. 제목에서 이미 흰 지팡이 걸이라 써있어서 시각장애인인 것은 알았지만 솔직히 시각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예 보이지 않는다고만 생각하지 그 안에서 여러 가지로 세분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랬다. 그래서 드라마 시작부터 몰랐던 것을 알게 해 줘서 좋았다. 회차마다 중간에 시각장애인이 가진 불편함이나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준다. 참 일본스러운 느낌으로 알려줘서 당황스러웠는데 내용 자체는 가벼웠고 몰입이라고 할만한 게 없어서 드라마 볼 때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설명해주는 분도 시각장애를 가진 개그맨이라 더 의미가 있었다. 일본 방송을 많이 보는 게 아니라 비교할 수는 없는데 한국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개그맨이 있었다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자신이 가진 신체적 불편함을 과장해서 웃겼을 것 같아 눈살이 찌푸러졌을 것이다. 장애의 문제만이 아니라 외모 비하, 비만 혐오가 주된 소재였어서 머리가 클수록 불편해져서 보지 않게 되었다. (비단 개그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다. 여기서 더 과장되어 희화화했던 것이지 어떤 방송에서든 외모지상주의가 심각했다.) 여기서 설명해주시는 분도 본인의 불편함을 소재로 간간히 개그를 날리긴 했지만 과장 없이 본인이 겪을 일을 풀어내는 것이어서 찝찝하지 않게 웃었다.

 남자 주인공인 쿠로카와 모리가 점자 보도블록을 막고 있어서 유키코가 그 길을 지나가기 위해 말을 걸다가 생긴 해프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날 이긴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같은 느낌으로 쿠로카와가 사랑에 빠져서 유키코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새끼는 뭘까…? 싶었는데 하루하루 유키코의 장애에 대해 배워가고 실천하는 모습에 내가 다 흐뭇해졌다. 처음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을지라도 그 사람에 관하여 공부한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안 보이면 내가 봐주고 도와주면 되는 것이지~가 아니라 유키코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을 응원하고,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도울 것은 없는지 생각하는 것을 보고 이게 진짜 이상적인 사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ㅠ일본 남자 연예인 비주얼 별로 취향 아니었는데 비주얼도 나쁘지 않아서 더 사랑스러웠다.

 쿠로카와는 단순하고 편견이 없다. 자신의 얼굴에 상처낸 시시오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고백했을 때도 미안하다가 아니라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답한다. 동성애가 전보다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해도 모두에게 인식이 좋아진 것은 아니라 그 얘기를 꺼내기까지도 미움받을까 봐, 혐오받을까 봐 여러모로 걱정했을 텐데 고맙다는 따뜻한 거절을 들으면 슬프긴 해도 고백하길 잘했다고, 내가 좋은 사람을 사랑했던 거라고 생각할 것 같다. 쿠로카와 본인은 유키코에게만 다정하다고 인식하는 느낌인데 주변 인물과의 에피소드를 보면 거 친면이 강한 거지 속은 한없이 다정하다. 단순무식 그 자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요즘 겉으론 다정한 척하고 속은 냉랭한 캐릭터를 많이 봤는데 오랜만에 이런 캐릭터를 봐서 더 좋았다. 역시 사람은 다정해야 돼… 내가 서브병에 걸리는 이유도 이것이다ㅠ

 여기에도 서브남주가 없지는 않았다. 유키코의 첫사랑 상대였는데 똑똑하고 다정하다. 이 친구도 유키코 덕분에 장애를 공부하고 진로도 그쪽으로 갔다. 쿠로카와나 얘나 참 좋은 친구다. 그런데 둘의 다른 점이 있다면 쿠로카와는 머릿속에 든 게 없기 때문인지 유키코의 모든 선택들을 응원해준다. 조금은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데 무조건적으로 응원해주고 실제로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반면 첫사랑은 (이름이 기억 안 남…) 응원은 하되, 현실적으로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한다고 조언한다. 나도 솔직히 얘처럼 말할 것 같아서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도전의 기회를 주는 것과 애초에 안될 것 같다고 차단하는 것은 차이가 크구나 느꼈다. 뭐든 고민하지 말고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한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고민하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운동 같은 것도 일단 하면 되는데 안될 거야 이건 안 돼라고 말하면서 하면 진짜 안돼서 거봐 안되잖아ㅠㅠ 하고 포기한다. 거기서도 아 그냥 안되네…. 더 연습해야지 생각하면 좋은데 말이다… 운동만이 아니라 모든 범위에 해당하지만 운동할 때의 나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ㅋㅋㅋㅋㅋㅋㅋㅋ

 유키코가 쿠로카와와 견줄만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알바에 도전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중간중간 유키코의 실제 시야를 보여주기 때문에 보는 나도 와… 이걸 할 수가 있나? 싶어서 걱정이 됐다. 자신이 좋아하는 BB버거 집에 면접을 볼 때도 패스트푸드 점이면 다른 곳보다 더 바쁘고 위험 물질이 많은데 가능한 것일까 불안했다. 단골이라서 사정을 알기 때문인지 무조건적으로 채용한 점장을 보고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생각도 했다. 처음부터 느끼해서 싫었는데 유키코를 기어이 위험에 빠트리는구나 싶었는데 이것도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본 것임을 느꼈다. (점장님 죄송합니다 ㅠ) 바쁘게 돌아다니며 여러 조리를 할 수는 없겠지만 한 파트에 익숙해져서 그것에만 집중하면 언젠간 빨리지기 마련인데 안 보인다고, 위험하다고 일단 배제하면 안 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른 알바생이 불안하고 답답하여 도와주려고 할 때, 점장님이 그 알바생을 막고 시간이 여유로우니 혼자서 할 수 있도록 봐주자고 말하는데 그 말에 내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다 유키코 잘해보라고 하는 것인데 해보고 안 되면 그때 도와줘도 늦지 않은 것인데 왜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지 못했을까… 버튼을 찾지 못하여 도움을 받은 것 외에는 다 유키코 혼자서 성공해서 기뻤다.

 점자가 붙지 않은 버튼을 보며 키오스크 생각이 났다. 일반인도 어려워하는 기계인데 음성이 나오지도 않고, 점자 버튼도 없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이용할 수 없겠구나 느꼈다. 음식점이나 카페는 카운터에 점원도 있어서 괜찮겠지만 무인 가게는 계산을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스스로 해야하는데 이게 보편화된다면 시각장애인들은 더더욱 갈 곳이 없겠구나 싶었다. 혐오의 끝은 그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라고 하던데… 장애인들이 지금도 잘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아예 설 자리를 잃게 만드는 게 발전이 맞는 건가 싶다. 기술만 좋아지는 거지 사실상 퇴화하는 것이 아닐까…

 쓰다가 생각난 건데 작년 여름 뮤지컬을 보러 갔을 때 시각장애인 관객이 있었다. 안내견과 함께 관람을 했는데 안내견은 그 사람 주변에 앉지 않으면 있다는 사실 조차 알 수 없도록 3시간 내내 짖지도 않고 있었다. 참으로 기특했고 신기했다. 뮤지컬은 듣는 재미도 있지만 시각적 효과가 더 큰데 그 재미를 포기하더라도 좋아하는 극을, 혹은 배우의 노래를 듣기 위하여 온다는 게 멋있었다. 사랑의 힘은 이토록 크고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느꼈다. 느끼기만 하고 실천을 못하는 게 문제지만… 생각이라도 한 게 어딘가..?^^ 올해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가볍게 보려고 한 드라마인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느끼게 만들어준 가슴 따뜻하고 귀여운 작품이었다. 일본 특유의 애니메이션같은 표현이나 과장된 행동이 있지만 거부감이 없다면 한 번쯤은 봐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난 남주 우는 모습이 너무 웃겼는데… 여주를 볼 때의 눈빛에서 사랑스러움이 느껴져서 설레고 좋았다. 난 나중에 또 재탕할 의사 있음… 재밌었다..!

 원작 코믹스가 있는 것 같은데 그림체 구리고 난 이미 현실 캐릭터들에게 마음이 뺏겨서 원작은 안 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