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 밑에서

※ 스포일러 있음

한창 공포영화에 불을 붙였을 때 친구가 추천해준 작품이었다. 제목만 들어도 일본의 음침함이 느껴져서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반해 꽤 오래 지나서야 꺼내보게 된 건 비밀…^^

 이혼한 부부가 딸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정이 되는 동안 딸은 어머니와 함께 새 보금자리에서 살게 된다. 보여주기 식으로도 일을 하지 않는 근무태만 경비, 어두운 복도, 습한 내부, 이 정도 가격이면 거저라며 계약을 부추기는 부동산… 영화 내용을 모르는 내가 봐도 이 집에선 절대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수중에 돈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이 모녀는 이 집에 들어오게 된다. 남편에게서 위자료를 받는다고 말을 했지만 아직이고,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단절이 됐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나 싶다. 이게 2002년 작품인데 아직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게 참 씁쓸했다. 그 당시보다야 나아졌을 수 있지만, 결혼하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고, 낳지 않으면 ‘여성’의 몸에 하자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가 될 수도 있고 딩크 부부일 수 도 있는 건데 말이다. 낳아도 문제다. 출산휴가를 길게 쓰면 주변 눈치를 봐야 하고 맞벌이 부부라면 갓난아이를 케어할 사람이 없기에 둘 중 하나는 관두게 된다. 조부모가 돌봐주는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 여자 쪽에서 관두게 되니 참 안타까운 상황이다. 내가 낳아본 입장도 아니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경단녀’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니 거의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 싶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전남편이란 놈이 위자료 외에 지금까지 고생했다며 깨끗하고 안전한 공간 하나만 구해줬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남편이라는 작자는 생일조차 모르는 딸을 자신이 키우겠다며 아내의 하자를 박박 긁어 변호사 측에 꼰지른다. 일남의 추접함에 가슴이 콱 막혀왔다. 딴 말인데 어머니가 일을 구하느라 딸을 늦게 데리러 갔을 때 이미 전남편이 데리고 갔었는데 딸과 손잡고 있는 뒷모습이 너무 유괴하는 것 같았다….ㅋㅋ 얼굴을 아는데도 저 놈이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걸까 무서움이 느껴졌다.

 모든것을 안고 계약한 집이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천장에서 점점 물이 새기 시작한다. 아무리 호소해도 부동산은 이미 팔았으니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근무태만 경비는 한결같이 일을 하지 않는다. 그 물의 출처는 윗집이었다. 그 집에는 예전에 실종된 아이 귀신이 머물고 있다. 그 귀신은 아이와 엄마가 집을 보러 왔을 때부터 자꾸만 아이를 현혹시킨다. 옥상으로 자꾸 올라가게 만들고, 자신이 갖고 있던 빨간 가방을 아이가 갖게 한다. 처음엔 이게 아이에게 자신의 물건을 전하면서 자신이 실종된 장소를 알려주려고 하는 걸까? 싶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미츠코(실종된 아이)가 이쿠코(자신의 아이)를 쫓아내려 한다고 할 때 이해가 안 됐다. 미츠코는 제 또래를 만나 반가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심리적 압박 때문에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일 거라 생각했다. 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이 맞았다.

 2년 전에 실종된 가와이 미츠코는 옥상 물탱크에 실수로 빠져 죽게 되었다. 그 날은 비가 오고 있었고, 자신을 데리러 올 부모는 없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바빴다. 그래서 자신의 아랫집 모녀를 시기하여 괴롭혔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이라면 어린애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을 했건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쿠코의 어머니를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로 생각하여 공격한다. <링>에서 맞은 뒤통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같은 곳을 또 맞아서 충격이 컸다. 왜 일본 귀신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는 걸까? 이 장면 전 주인공이 미츠코가 살고 있던 405호에서 비가 오는 환각을 봤을 때는 긴장감이 넘쳤다. 보이는 장면 자체로도 좋았지만, 미츠코가 왜 그날에 멈춰 살고 있는지 여기서 알려줄 것 같았다. 그러나 미츠코는 그 장면에서 나오지 않았고 주인공의 눈을 속여 이쿠코로 변장한 채 주인공을 유인하여 공격했다. 자신의 모습을 바꾼 것까지는 좋았는데 제 엄마라 착각하고 목을 조를 때는 정신이 나갔나 싶어 긴장감이 사라졌다. 왜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걸까? 아무리 어린애라도 어머니 얼굴을 기억할 것이고, 죽은 지 2년밖에 안됐다. 심지어 어머니를 향한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상한 말이지만... 그렇게 사리분별 못 하는 귀신이라면 모든 성인 여성을 공격해야 하는 게 더 맞지 않았을까?? 엄마를 향한 일그러진 외로움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모습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른 사람이 그래, 내가 네 엄마야라고 말을 하니 공격을 멈추고 같이 떠난다. 정말 어이가 없다... 나중에 가서 사과나 했는지 묻고 싶다. 

 

 둘이 잘 살아보자 생각했던 곳에서 겨우 자신의 딸만을 구해낸 어머니가 불쌍하다. 다른 장르에서도 그렇지만 유독 공포영화가 더 모성애를 많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 같다. 예전에 봤던 <장산범>이 떠오른다. 그 영화의 일그러진 모성애를 생각하면 이 영화가 더 낫다. 이건 적어도 나에게 결혼하고 애 낳아서 경력 단절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은 심어줬다. 결혼 자체를 안 할 것이지만, 한다고 하더라도... 사회생활은 계속 해야하고 나는 나만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성별이고 나이고 다 떠나서 나를 제일 알아주는 사람은 나뿐이다. 남은 나를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걸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차별이 생겨나는 것이겠지. 이해해주지 않는 사회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불쌍한 사람들의 심리를 생각해본 것일 뿐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뒤 이쿠코는 결국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커서 학생이 된 이쿠코는 예전에 살았던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공포영화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아무도 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어머니 환상을 진짜 엄마라고 생각하여 여기서 같이 살자고 말하는 게 제정신인가? 외관이 멀쩡하다면 몰라도 딱 봐도 귀신만 돌아다닐 것 같은 폐가에서 그러는 것이 신기했다. 그리운 마음은 알겠지만 어떻게 귀신이 아니라 생각하지... 그리워서 보고 싶었다고 말하면 몰라도 공포영화 캐릭터들은 정말... 이상하다. 

 

 내용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분위기는 좋아서 애매한 영화다. <링>이랑 비교하자면 사다코가 더 싸가지 없지만 걔는 워낙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녔기에 조금은 더 납득이 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어이는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았다고 생각이 드는데 미츠코는 원한의 대상이 제대로 있던 아이라 납득이 안 되는 것 같다. 장면들이 좋았던 만큼 아쉬움이 남는다...

 

 쓰면서 생각해봤는데 나중에 다른 일본 작품들도 보고 귀신 싸가지 순위를 매겨봐야겠다. 내 기억력이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메모해둔 뒤 5~10명쯤 됐을 때 글 써봐야겠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봐야 하는데 리뷰 쓰기가 쉽지가 않다 ㅠ 게임 고만하고 노력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