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스포일러 있음

 

 영화에 관심도 갖기 전에 ‘불륜’이라는 말을 먼저 들어서 근처에도 가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은 영화였다. 그럼에도 보게 된 이유는 야구를 보러 지방에 내려왔는데 우천 취소가 되는 바람에(..) 시간이 붕 떠버려서 상영하는 영화 중에 그나마 나아 보이는 것을 찾아야 했다. 부천 영화제에서 못 봤던 작품을 볼까 했는데 이미 내려간 건지 밑에선 상영을 하지 않는 건지 몰라도 그 영화는 하지 않았고, 몇 작품 상영하고 있지도 않았다. 거르고 거르다 보니 그나마 볼만한 게 이거뿐이어서 그래, 보고 난 뒤에 욕하자… 라는 마음으로 티켓을 끊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더러워서 토하고싶었다. 추리를 보여주는 장면들은 괜찮았는데 불륜을 넣지 않고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걸까? 예술가들에게 금단이 주는 에너지라도 있는 걸까… 영화 자체가 불륜 미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 지인조차도 이걸 ‘로맨스 코미디’라고 말하고 있다. 의도가 미화는 아니더라도 내용의 큰 틀이 둘의 로맨스고 사람들의 그들의 감정선에 열광하는데 정말 문제가 되지 않는 건가 싶다.

 문제라면 막장드라마나 다른 작품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막장드라마는 아예 안보지만,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는 장르를 선호하는 나도 살인 그 자체가 문제인 것을 알지만 쟤는 정말 죽을만했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뭐라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무조건 고어라면 환장하는 사람은 아니다. ‘여성’만 죽이는 내용이라던가, 서사 없이 무조건 잔인한 장면만 넣으면 되는 줄 아는 영화는 절대 보지 않는다. 둘 다 서사가 없기 때문인데 전자는 현실에서도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일이고 살인범에 절대 이입할 수 없을뿐더러 이해할 생각도 없다. 후자는… 그냥 포르노일 뿐이고. 다른 예로 놀래키기만 하면 무서운 줄 아는 공포영화들도 싫다. 서사 없는 영화는 다 정말 정말 싫다.

 이 영화도 내가 감정선을 따라갈 서사가 없었다. 탕웨이가 맡은 ‘서래’라는 인물 자체는 정말 매력 있었고, 다시 남자 주인공이 보고 싶어서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도 또라이같고 좋았다. 그렇지만 불륜이라는 큰 문제를 떼어놓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마냥 매력 있다고 헤벌레-하며 즐길 수 없었다. 제일 문제는 박해일이 맡았던 인물인데 (이름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서 벌써 까먹음…ㅋㅋ)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아내는 가정을 잃지 않기 위해 좋든 싫든 매주 한 번 관계를 가지며 못 봐서 멀어진 만큼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남편이 한 일? 주말에 요리해주는 것, 공허한 눈으로 관계를 가지는 것 그뿐이다. 말을 고분고분 들어서 제 딴엔 노력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관계하면서도 아내를 보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다른 곳을 보는 게 노력하는 자세일까? 몸을 움직이며 건강을 챙기는 것도 있겠지만(정확한 대사가 기억 안 남) 그때만큼이라도 서로를 보며 마음을 나누자는 의미도 있을 텐데 그 시간조차 내주기 싫어하는 모습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서래와 관계를 나누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아내에게 하는 행동과 서래에게 하는 행동이 다른 것은 다른 장면으로 여실히 보여준다. 초밥 먹자는 아내의 말에 말 같지도 않은 말로 거절을 하더니, 취조할 때 초밥을 시켜 먹고 손수 치약을 짜주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제일 경악했던 것은 재킷에 손을 댈 때였다. 서래와 데이트..ㅋㅋ를 갔을 때, 서래가 박해일의 재킷을 뒤질 때는 올곧게 서래를 쳐다본다. (이건 후반부에서도 똑같았다.) 그러나 아내가 생선을 만진 탓에 티슈가 필요해서 자켓을 만졌을 때는 아예 고개를 돌린다. 마음이 떴으면 가정을 정리할 것이지 지만 나쁜 놈 되기 싫으니까 뻐팅기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으~ 극혐. 너무 한남 같은데 이걸 어떻게 로맨스라고 말하면서 좋아하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다.

제일 더러웠던 장면은 아내가 남자를 소개할 때였다. 본인은 즐길 거 다 즐겨놓고 한다는 말이 매주 한번씩 가지는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하 냐는 거였다. 아니… 본인이 과거에 한 행동들은 뒤돌아 보지 않고 피해자인 척 그래도 되는 건가?? 제대로 내로남불 선사해주셔서 그냥 스크린 안으로 손 넣고 때려주고싶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렇게 더러운 한남 로맨스를 … 로맨스로 봐주는 건가…? 진짜 세기의 사랑 납셨다.

 <안나 카레니나>처럼 불륜해서 파멸의 길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마지막에 서래는 죽고 박해일은 서래를 찾아 서서히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소문나서 본인의 평판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지 마음 조금 아프다고 아내보다 속이 쓰릴 것 같진 않음.), 관심 가져달라고 별 짓을 다해도 (나 같아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관심 가지려 하면 오던 마음도 다 뜨겠음…) 점점 더 봐주지 않는 남의 남자 때문에 여자만 죽는 게 이해되지 않고 싫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작품이 <닥터 지바고>인데 딱 그 느낌… 지들만 순수하고 지들만 사랑하지… (영화랑 소설은 안 봤는데 뮤지컬 보고 정 다 털려서 다른 형식으로 보고 싶지 않다.) 우웩이다 진짜 불륜으로만 보고 진짜 재미를 모른다고 영알못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영알못하겠다. 허구고, 예술이라는 것으로 더러운 사랑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싶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무너무 더러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