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오단계

 

※ 스포일러 있음

 

 

 작년에 봤던 SF8 <인간 증명>의 원작 소설이다. 그 당시에 정말 흥미롭게 봤었는데 최근에 접하게 된 뮤지컬 중에 비슷한 소재의 시놉시스가 있어서 원작이 같은가? 찾다가 냅다 읽어버렸다. (그 뮤지컬은 다른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다.) 

 

 죽다 살아난 아들이 자신과 공생하는 인공지능에게 자신을 죽여달라 부탁하고, 그걸 알아챈 어머니와 법정공방을 벌인다는 큰 틀은 같지만 인물 간의 설정이 좀 달랐다. 책에서는 어머니가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자신의 도구로만 생각하여 본인의 의도와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하기도 하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고소를 진행한다. 

 

 솔직히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평범하게만 대해줘도 아들은 두 번이나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가장 큰 이유임을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왁왁 소리를 지르는 게 영 찝찝하다. 직접적인 가해를 하지 않았으니 시치미를 떼고 그 정도도 못하냐고 말하는 게 눈에 선하다. 소재가 비현실적이어서 그렇지 일어나는 내용들은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인간 수준으로 성장하는 인공지능을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기계의 독립권' 이야기가 나온다. 영화 후기를 쓸 때 비슷한 주제로 생각을 썼었는데 결론적으로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건 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립권을 줘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지만, 아이가 자라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듯 남의 명령에서 벗어나 나만의 생각을 갖게 된 기계들도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난... AI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기계들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여 인간을 배제하고 대화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본인들이 자초한 것 아닌가 그거까지 예상 못하고 만들었나 싶지만 계속해서 발전시킬 거면 한 번쯤은 생각해볼 문제 같다.

 

 

"저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감히 어떻게 재단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오지만 느낌이 정말 상반되었다. 영화에서는 안타깝고 먹먹한 마음이 드는 반면, 책에서는 어쩜 저렇게 뻔뻔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어머니가 한 짓이 있기에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런 내용을 기반으로 다른 감정이 들게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둘 다 법적 공방 위주지만 책에서는 세계관 설명이 많기도 하고 내가 모든 상황을 그려내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까진 빨리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흥미롭고 집중이 잘 되어서 하루 만에 책을 다 읽었다. 100페이지 이내의 단편이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 과거에는 하루에 10~20페이지만 읽고 책을 덮었었기에 나에겐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

 

 뒤에 다른 단편들도 수록되었는데 일단 다른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반납하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다시 빌려서 후기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