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토로의 호기심의 방 - 겉모습

※ 스포일러 있음

“심야 TV, 어둠 속의 영상과 목소리가 우리 머릿속에 박히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전자 캐비닛이 겉과 속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누구이며, 또 누가 되어야 하는지 완벽함은 수신자 부담 전화 한 통으로 얻을 수 있죠. 게다가 이 캐비닛은 싸구려 플라스틱과 숫자로 이뤄진 마술 지팡이로 작동합니다. 손에 딱 맞고 떼어 놓기가 힘들어요. 이번 이야기는 ‘겉모습’이고 감독은 애나 릴리 애머푸어입니다.”

크리스마스에 4편을 보게 되었는데 정말 의도한 건 아니지만 영화 속 배경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과몰입하기 좋았다. 자신이 평생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지니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된 스테이시는 선물 받은 로션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파티에 찬물을 끼얹고 집으로 돌아온다. 속상한 스테이시 앞에 펼쳐진 TV 광고는 과장된 말로 스테이시를 현혹시켜 알러지 반응이 있음에도 그 로션을 계속 바르도록 만든다.

스테이시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오리 박제품을 선물한다. 박제라는 게 실제 동물을 사용하여 그 모습 그대로 평생 영원하도록 만드는 것이기에 굉장히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미’에 집착하는 일부의 여성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바뀌는 몸의 변화를 거부하고 평생 젊은 시절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온갖 시술과 리프팅을 한다. 박제는 동물을 죽이고 보존하는 것이기에 시술이 낫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시간을 보존하기 위한다는 것만 비교하면 그들이 박제품을 그렇게 싫어하는 것도 참 이상한 일이다. 주인공의 취미가 박제라는 설정을 한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런 크림과 파우더, 로션으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 알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말이야. 자기는 아무 문제 없어 전혀. 자기한테 문제가 있다면 나한테도 있는 거야.”

“아니, 자기는 괜찮아. 자기는 언제나 괜찮을 거야. 왠지 알아? 자기는 남자니까. 남자는 뚱뚱하고 털 많고 못생기고 무례하고 늙어도 괜찮아.”

광고의 후려침에 제대로 당한 스테이시는 제 애인이 아무리 지금 모습도 괜찮다, 아무 문제 없다고 말해줘도 자신에겐 문제가 있다며 책망하고 계속해서 로션을 바른다. 더 좋은 대사가 있었지만 너무 길어서 쓰긴 그렇고…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내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외적인 모습을 보는 게 아닌, ‘나’라는 그 자체를 봐주는 사람. 그렇지만 한 명이 스테이시의 바닥난 자존감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자신의 변화를 원치 않는 애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스테이시는 급기야 애인을 죽인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분 변화, 뻣뻣한 관절, 환각, 친밀함에 대한 두려움, 내적 공허감, 무기력함, 자존감 부족, 자주적인 생각과 견해 부족, 전에 즐겁다고 생각했던 활동에 무심해질 수도 있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요.”

로션과 한 몸이 된 스테이시는 정말 변화한 듯 보였다. 더 이상 은행 직원들이 자신을 무시하지도 않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준다. 초반 파티에서 스테이시를 비추는 앵글은 안 그래도 왜소한 스테이시를 더 작게 비췄는데 마지막은 스테이시를 중심으로 보이게 만들어 그 차이를 극대화시킨다. 그러나 그게 정말 현실인지는 알 수 없도록 부작용을 기재한 게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는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자신이 변화했다고 착각하고 산다면 스테이시는 행복하겠지… 쓰다 보니 생각난 건데 부작용이 시작됐을 때 애인이 변했다고 지금 변화한 모습이 완벽하다고 말했으면 스테이시는 로션 사용을 멈췄을까? 싶다. 아니면 환각이 나타나기 전이라 장난치지 말라며 먼저 죽였을까..? 덜 미치기 전이라 죽이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로션 사용을 계속했을 것 같긴 하다.

스테이시를 현혹한 광고 속 인물이 남자라는 것도 현실적이었다. 성형 광고도 그렇고 잘 팔리는 네일 팁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대표도 남자인 게 매번 소름 돋는 포인트인데 그걸 잘 집어냈다고 생각한다. 좀 다른 게 있다면 영화 속 남자는 잘생긴 사람이었단 거..? 현실을 그렇지 않으니깐ㅎ 말하는 남자 옆에 트로피처럼 예쁘게 서있는 모델도 현실적이고… 지금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얘도 원작 소설이 있다고 한다. 앞선 편들 책들 읽고 싶어서 찾아봤는데 한국 정발?은 안됐나 보다 읽고 싶은데 아쉽다.ㅠ 5편은 내년에나 볼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