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 스포일러 있음

 

 

 친구의 추천으로 1월 1일 새해에 보려고 했던 영화인데 미루고 미루다 보니 이제 보게 되었다. 어쨌든 올해 첫 영화!

 

 시놉시스만 봤을 때는 <화차>와 비슷한 느낌의 영화라 생각했지만 전혀 달랐다. <화차>가 자신이 평범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서 신분세탁을 해온 거라면 <오디션>은 과거의 상처가 정신을 지배하여 주인공을 괴물로 만든 느낌이었다.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는 이들도 어떤 형태로든 자신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불순한 의도가 담기기도 하였다.

 

 자신의 새 아버지는 어린 아사미에게 자신을 위해 계속해서 춤을 추라고 강요하며, 불을 지진 몽둥이로 아사미의 사타구니에 화상을 입혔다. 시바타라는 남자는 주인공과 다른 여자에게 동시에 사랑을 줬다. 그렇기에 벌을 받아 마땅했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관계가 지저분하지도 않았고 불순한 의도도 없었다. 정말 아사미와 재혼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디션을 핑계로 아오야마가 원하는 사람을 모아 셀렉했다는 것이 큰 오류라는 것은 안다. 나도 이 부분에서 '정상적인 아버지 같았는데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걸까...'란 생각을 했었지만 이후에는 그저 사랑에 빠진 아저씨로만 보였다. 사실 이 영화가 로맨스 영화였다면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도망쳤을 것이다. 이 영화의 장르가 공포/미스터리였기에 참고 볼 수 있었고, 남자가 정말 순수하게 사랑을 했었어도 여자는 사랑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여튼... 영화 장르를 믿고 아저씨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보았는데 아사미는 그런 나에게 정신 차리라는 듯 어퍼컷을 때렸다. 미스터리에서 하드고어로 장르 전환이 된 것이다.

 

 앞서 얘기했든 아사미는 아오야마가 자신만을 온전히 사랑해주길 바랐다. 그렇기에 영화 내내 순결을 상징하는 흰 옷만 입고 나온다. 외투는 다른 색일지라도 내의는 흰색이다. 아오야마와 여행을 갔을 때도 흰색만을 강조했다. 그들에게 자신의 일생이 개뻥일지라도 그만큼 자신의 마음은 순수하다는 걸 내포한다. 하지만 아오야마는 자식도 있었고, 사별했지만 아내도 있었다. 아오야마는 자신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자신의 신붓감을 찾기 위해 오디션을 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과 결혼하는 것도 그저 몸을 원해서라고 생각했다.

 

 막상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오야마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오디션을 주최한 아오야마의 친구는 불행한 여자가 배우로서 더 많은 것을 표현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게 했고, 배드신과 노출신이 있어도 찍을 수 있냐는 질문도 했다. 노출을 감행하여 오디션을 보는 여성들도 비췄다. 아오야마는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그런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았고 옆에서 지켜봤다. 오디션으로 신붓감을 고르자는 친구의 이상한 제안도 끝까지 거절하지 않고 제 마음에 든 아사미에게 접근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과 나잇대가 더 비슷한 여성을 말이다.

 

 순수한 마음을 내비췄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만났기에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아사미는 장르에 눈이 멀어 영화적 허용을 한 나와, 현실에서도 제 분수를 알지 못하고 어린 여성만 찾는 남성들을 철저하게 응징해 준다.

 

 아오야마의 발목이 깔끔히 잘려나간 것을 본 아사미의 청량한 표정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가슴속 깊은 곳에 있던 응어리를 없앤 표정이었다. 너무나 기뻐 보였다. 솔직히 그 표정이 너무 귀여워 보였다. 응.. 아사미하고 싶은 거 다 해... 나한테는 하지 말구.. 응응 너무 멋져요...

 

 외박을 하겠다던 아오야마의 아들이 다시 집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아오야마를 자신만 바라보는 노예 2로 만들겠다는 아사미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자신을 피해 발버둥 치는 아들 때문에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져 입만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솔직히 아들도 제 여자친구가 겉보기와 다르다, 여자는 무섭다는  빻은 얘기를 하기 때문에 아사미에게 죽을 줄 알았다. 잔인한 묘사는 없더라도 기절당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아사미가 그의 발길질에 당할 줄이야... 자신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은 자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진 모르겠지만 그 부분이 아쉬웠다. 너무 불행포르노 그 자체 같았다. 그래도 그 입으로 초반에 아오야마에게 했던 말을 다시 읊어대며 끝나서 끝까지 미친 캐릭터로 남아 마음에 들었다. (옛날 영화니까... 그냥 좋게 받아들이기로 함...)

 

 하지만 안타까웠다. 어린 시절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을 줬더라면, 새아버지가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아사미는 지금처럼 사랑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사미가 만나온 사람들이 다 죄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만... 어린 시절 건강히 컸더라면 그런 사람들 만나지도 않을 것이고 행복했을 것이다. 항상 불행했기에 특별히 불행함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아사미를 안아주고 싶었다. 아사미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걸까? 마음이 아프다.

 

 슬픈 말이지만 현실에서도 아사미만큼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트라우마가 성적 페티시가 되기도 한다. 두려움을 잊고 싶어서 흥분으로 치환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큰 상처는 자신의 무의식을 헤집을 만큼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된다. 팍팍한 현실에 항상 날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상처받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하고 다닌다. 그게 누군가에겐 큰 상처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성적으로는 당연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 없는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사람을 대했으면 좋겠다. 자기도 당하면 싫을 거면서 왜 역지사지를 못하고 사는가... 많은 영화를 보면서 맨날 이런 생각 들었는데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생각을 안 한다. 에휴... 아사미야 내가 안아줄게 오늘은 내 꿈에 놀러 오렴... 네가 다른 곳에선 꼭 행복했음 좋겠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