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액터

 

※ 스포일러 있음

 

 

 부천에서 기대하는 스타일의 영화라기보단 연기하는 상황에서 어디까지가 용인될 수 있는지 등을 토론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어 예매를 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영화의 의견은 올곧았다. 상호합의하지 않은 모든 스킨십은 다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영화 초반에 분장을 받으며 영화와 연기에 대한 얘기가 오간다. 그 상황에서 배드신을 진짜로 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여자주인공은 자기는 실제인 것처럼 연기하는 게 직업이지 실제로는 하고 싶지 않다며 완강하게 섹스를 거부한다.

 

 하지만 그 장면을 촬영하게 됐을 때 남배우는 프리스타일로 삽입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되냐는 질문을 하긴 했지만 상대방에게 돌아오는 답변이 없음에도 넣어버린 것이다. 실시간으로 굳어지는 주인공의 표정에 영화는 중단되고 만다.

 

 완전한 전라로 촬영이 되지는 않았기에 스탭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모두가 확인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입장차이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숨이 턱 막혔다.

 

 주인공은 강간을 당한 피해자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도 할 수 없다.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는 아니라고만 말하면 되고 자유로이 몸을 씻거나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서부터 그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해자가 정말 자신이 죄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미 물어봤고, 대답이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 상황과 분위기에서 싫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삽입을 했다는 것인데 대체 뇌가 어떻게 돌아가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궁금했다. 피해자가 대답을 했나요? 그 분위기가 정말 정답이라고 생각하나요? 과거에 정말 하기 싫다고 했던 피해자의 말은 과거로만 생각했나요?

 

 와중에 가해자의 뒤에 선 이들은 피해자에게 왜 그 상황에서 즉시 소리를 지르지 않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냐며 피해자를 꾸짖는다. 이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피해자는 완전무결해야하며 어떠한 당황스러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순발력 있게 상황을 캐치해야 하는 능력을 가져야만 피해자로 입증이 되는 것이다. 피해자가 느낀 상황을 아무도 알지 못하면서 정확한 증거나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가해자를 싸고도는 이 상황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괴로웠다.

 

 또한 가해자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고소를 계속해서 진행하는 모습에 피해자는 꽃뱀으로 몰려간다. 사과를 받고 말고는 내 맘인데 왜 가해자가 그것을 정하는 걸까? 애초에 가정이 걱정되고 자신의 미래가 걱정됐으면 하지 않아야 하는데 사과를 받지 않는 것을 더 크게 여기는 것조차 전혀 문제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근데 이것도 너무 현실적이잖아ㅠ...

 

 그래도 피해자 측의 공론화로 피해자를 연대하는 이들이 움직이고 가해자가 시원하게 린치당하는 장면이 나와서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만 같았다. 대한민국은 피해자보다 남자 가해자의 인권이 더 중요해서 신분도 가려주고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가해자를 해하는 사람들을 더 나쁘게 생각하여 발로 차지만, 해외에서는 실제로 저런 일이 벌어지는 곳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부럽고 저 연대에 가슴이 따듯해졌다... 진짜 울컥했는데 양 옆으로 남자 관객들이 이상한 포인트에서 헛웃음 지어서 눈물 쏙 들어가서 짜증 났다ㅠ 하 이 영화를 보면서도 그들은 문제가 뭔지 모르겠지 걍 개 짜증남 씨발...

 

 

 "왜 저에게 소리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강간보다 소리치지 않은 게 더 큰 문제인 것 처럼요"

 

 진짜 모든 장면이 불필요하지 않고 폭력적이게 연출이 되지 않아서 이건 꼭 수입이 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 느꼈지만... 후반부에 이 대사를 듣자마자 이건 꼭 한국에서 상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지섭 부르기 전에 먼저 수입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이걸 보고도 피해자의 입장을 모르는 이들은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피해자를 한 번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면 그걸로 성공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선택적으로 피해자를 생각하는 건 알지.. 피해자가 남자일 때는 제가 당한 일인 것 마냥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니까... 쩝...

 

 가해자가 사과하러 왔을 때의 상황이 녹음된 음성이 엔딩 크레딧 나올 때 나오는데 영화를 봐서 그 장면을 생생하게 봤음에도 다르게 느껴졌다. 음성과 텍스트로만 들으니 더 생생하고 실제적으로 느껴졌달까... 내 마음을 크게 누르는 작품이었다.

 

 리뷰를 쓰면서 여러 연예인의 성추문을 얘기하고 싶었는데.. 그러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다 빼버렸다. 여튼 나는 과거의 너를 정말 사랑했지만 피해자가 싫다는 행동을 한 너를 죽어도 용서하지 않을 생각이야. 그러니까 넌... 진짜 빨리 은퇴하고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사라가지 않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