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cm

 

※ 스포일러 있음

 

 

 시각장애인 애인의 가이드러너로서 함께 마라톤을 준비하는 은정은 주변사람들이 자신을 봉사하는 사람으로만 보는 것이 불만이다. 그런데 자신의 애인인 가영조차 자신이 원해서 마라톤을 도와주는 것이냐고 질문하니 더욱 짜증만 날 뿐이다. 

 

 이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이해한다기보다 그들 옆에 자연스레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 시선에 관해 다뤘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겐 일상적인 행동을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다고 불쌍하다고 취급하고 봉사자로 인식하고 있다. 사람에 따라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과 처해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을 일반화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을까?

 

 최근 모 연예인의 결혼식 축사가 논란이 된 적 있었다. 하반신 마비의 신랑측 동생이 둘의 결혼을 축하한다기보다 자신이 더 이상 수발을 들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동생도 동생의 인생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불만은 있었겠지만 행복한 날에 남에게 불행 프레임을 씌우는 것 같은 멘트는 정말 적절치 않았다. 내가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의 슬픔을 가늠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남의 생각과 행동을 멋대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이후에 힘들고 억울하다고 할지언정, 당장 기쁘고 좋은 마음에 내가 하고싶어서 하는 일에 '너는 네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불쌍해서 도와주는 거야. 네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거야' 따위의 초치는 말이 도움이 되는 말일까?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해도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내가 하겠다는데 왜 나의 선택에 태클을 걸지 못해 안달이 나는 걸까?

 은정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같이 뛰고 싶었을 뿐인데 언제까지 가영(애인)의 수발을 들 것이냐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남들에게 착하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이것이 계속되면 좋아서 하던 일에도 의문을 가질 것이고 결국엔 마음이 변질될 것이다. 결국 내가 바뀌는게 아니라 남들의 시선에 의해 강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마라톤에 참여하기 위해선 가이드러너가 필요하다. 그들은 믿음의 끈(리드줄)로 이어져 함께 속도를 맞추며 달리게 된다. 누구 한 명이 빠르게 뛰게 되면 호흡이 엉키고 무너지게 된다. 둘 다 앞이 보이는 상태여도 호흡이 무너지면 위험한데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의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면 더욱 큰일이다. 이 영화는 마라톤을 소재로 서로의 신뢰와 믿음을 그려낸 것이다. 중간에 서로 맞지 않더라도 다시 엉킨 줄을 풀어내며 한발 한발 다시 호흡을 맞춰간다. 

 

 많은 사람에게 편견과 오해를 받는 장애, 퀴어란 소재를 정말 멋지게 잘 사용 한 것 같아서 흥미로웠다. 쓰고 싶은 건 많은데 나도 편견에 사로잡혀서 일반화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에... 적는 게 망설여졌다. 여하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당장은 의심하지 않고 질릴 때까지 미련 없이 하고 싶다. 질리더라도 내가 해왔던 일에 후회를 가지고 싶지 않다! 이걸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