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밤

※ 스포일러 있음

 

 

 

뮤지컬이 나온다기에 읽게 되었다. 100페이지 남짓한 아동도서였는데 초반부터 현재의 시국을 닮은 듯한 모습에 기분이 이상했다.

 

코끼리 고아원에서 태어난 코뿔소 노든은 자신을 닮은 친구들이 궁금했지만 자신에게 친절한 이곳이 너무나 좋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코끼리들의 조언에 내디딘 홀로서기도 처음엔 괜찮았다. 사랑하는 아내도 만나고 딸도 생겼다. 하지만 그들을 사냥하려는 인간들에 아내와 딸이 죽었다. 자신이 부족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여러 방면으로 그들의 죽음에 자책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절대 노든의 탓이 아니다.

 

동물원에 구조됐을 때도 그랬다. 무기력하고 공격자신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준 앙가부. 다리 저는 자신 때문에 홀로 남은 앙가부가 사냥꾼에게 희생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온 그들이 둘이었다 한들 과연 앙가부만 죽였을까? 그냥 타이밍이 좋지 못했던 것이다.

 

노든은 펭귄 치쿠와 함께한 여행길에서도 자신이 치쿠에 힘듦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노든과 함께했던 아내와 딸도, 앙가부도, 치쿠도 절대 노든의 탓을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밤새 노든에게 들었던 흥미로운 이야기와 같이 함께 의지하며 보냈던 시간들에 감사하며 눈을 감았을 것이다.

 

치쿠의 부탁으로 끝까지 불길한 검은 점이 박힌 알을 품었던 노든은 끝끝내 펭귄을 부화시킨다. 노든은 제가 다른 동물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들을 나눠주고 펭귄의 고향인 바다를 향해 여정을 떠난다. 자신이 받아온 친절과 지혜를 앞으로 더 길게 살아갈 어린 친구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포기할 수가 없어. 왜냐면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거잖아. 그들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간힘을 써서,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남아야 해."

 

노든은 자신이 죽어감에도 제가 그랬듯 펭귄이 스스로 살아남길 바랐다. 가장 인상깊었던 게 끝까지 펭귄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이름이 생겼기에 불행해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름 없이도 널 알아볼 수 있단 대목에서, 이름을 지어줌으로써 자신 때문에 펭귄이 죽을까 지어주지 않은 부분에서 정말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하지만 노든이 끝까지 이름 때문이 아리난 것을 알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은 슬프다. 모든 일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적인 말은 정말 좋아하지 않는데 노든이 겪은 불행들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냥 어쩌다 일어난 재난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떤 탓을 하더라도 어떤 날은 그 방법이 먹힐 것이며 어떤 날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안 됐으면 훌훌 털고 더 나은 방법을 위해 나아감이 필요하다. 계속해서 그 슬픔에 잠식된다면, 노든은 더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참 웃기지만 나도 전보다 많이 성장했고, 전보다 많이 훌훌 터는 법을 배웠기에 노든에게 더 이입이 되고 공감이 갔다.

 

어찌됐든 그냥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내 시야를 넓히고, 더불어 살아감을 깨우치는 것이다. 전혀 보지 못했던 바다에 가기 위해, 펭귄을 바다에 데려다 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끝끝내 펭귄이 노든의 지혜를 발판 삼아 바다에 도착한 것처럼 말이다.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맨 앞에서 기재했듯 이시국과 닮았단 것이다. 과거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언어로, 이 문화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노력해서 지켜보고 전승해 온 이 지혜와 문화가 더 나은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감사함과 미안함을 담아 우리는 더 멋지게 살아가야 하고 때로는 지혜를 나눠 '같이' 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코끼리 고아원의 코끼리들이, 노든의 아내와 딸이, 앙가부가, 웜보와 치쿠가, 노든이 남긴 것들을 전부 흡수해 더 나은 내가, 내일이 되길 바라고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