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서가 왜그럴까

※ 스포일러 있음

 

 

 뻔하고 유치한 스토리의 로맨스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 그런 로맨스를 보면 아는 사람이 허접한(?) 드라마를 찍는 기분이 들어 중국이나 대만 로맨스 드라마를 봤었다. 많은 플랫폼을 아는 것도 아니고 정말 유치한 걸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볼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아무리 재밌어도 보지 않기 때문에 한동안 볼만한 것을 찾기 위해 이것저것 간을 봤다. 그러다가 발견한 드라마 고심해서 고르고 본 건 아니고 뭐가 너무 보고 싶은데 볼 건 없어서 눈에 띄는 거 아무거나 틀었다...

 

 9년 동안 영준의 곁에서 비서 일을 하던 미소는 가족 빚을 다 탕감하고 자신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퇴사를 고한다. 미소가 자신의 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영준이 미소를 붙잡기 위해 프러포즈를 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정은 못 하지만) 외모 + 능력까지 다 갖춘 남주가 여주 좋아하는 것을 자각 못하고 매달리는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스토리가 진행되고 여주가 남주를 향한 마음이 커질 수록 재미는 반감됐다. 스토리가 훤히 보여도 잘 보는 편인데 왜 그랬을까... 한동안 안 보다가 다시 꾸역꾸역 보면서 든 생각은 로맨스에 치중하면 좋았을 텐데 남주와 여주 사이에 얽힌 스토리가 별로여서 그랬던 것 같다. 

 

 영준은 어린 시절 겪은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여성과의 스킨십을 거부했다. 사랑하는 미소와 키스를 하려 하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이런 장면이 몇 번 반복되면서 영준이 어렸을 때 성추행을 당한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기다리라는 형의 말에 골목에 혼자 있다가 어떤 여성의 짐을 옮겨주면서 납치를 당하게 되고 그 여자가 같이 저승에 가자고 다가왔다. 여자는 결국 혼자 이승을 떠났고 영준은 그 뒤로 케이블 타이를 보면 경기를 일으키고 죽음에 관해 남다른 추억을 안게 되었다. 솔직히 트라우마라는 게 직접적으로 겪은 게 아니어도 생기는 것은 이해가 간다. 이해가 안 가더라도 내가 겪은 게 아니고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이건 드라마잖아... 목을 조르려고 다가온 게 다인데 스킨십에 트라우마가 생긴다는 설정이 너무 빈약하다고 생각했다. 억지로 끼워 맞춘 기분이 들어서 싫었다.

 

 그 자리에는 미소도 함께 있었는데 미소는 그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도와준 오빠를 찾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영준에게 설정을 몰아주지 않아도 어릴적 나를 도와준 오빠를 찾는 것에만 비중을 둬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저거 하나 뺀다고 분량이 엄청 줄어드는 것도 아닌데... 설정을 아예 바꾸는 것도 아니고... 참 아쉬웠다.

 

 미소가 찾던 오빠의 후보에는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영준이고 다른 한 명은 영준의 형이었다. 이름은 영준의 형이 일치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영준이 형에 부합하는 설정이라 미소만 바보로 만들어서 그 시간이 너무 루즈하게 느껴졌다. 영준의 형도 미소가 마음에 들었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지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됐다고 바로 꼬리를 내리니... 긴장감이 하나도 없었다. 

 

 원작은 어떤지 몰라도 드라마는 그냥 그랬다... 그래도 한동안 밥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내가 너무 한국 드라마에만 이것저것 재는 것 같지만 우리나라 드라마니까 어쩔 수가 없다. 잘 만들어야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