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

※ 스포일러 있음

 

 

 공포영화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 나는 옛날 영화부터 차근차근 밟아가려고 리스트를 세웠다. 원래 순서대로라면 <셔터>를 볼 차례였는데 친구가 영화 보려고 마음먹은 타이밍에 맞춰 <어스>를 보라고 연락을 해가지고 <어스>를 먼저 보게 되었다.

 

 <겟 아웃>을 만든 감독의 다음 작품인데 두 영화를 다 보고 나니 흑인 인권에 관한 내용을 영화 속에 녹여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잘 드러났다. 이 영화는 흑인 인권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에 관하 말해주고 있다는 게 맞을 것 같지만 말이다.

 

 초장부터 떡밥을 잘 뿌려준 탓에 길 잃지 않고 쉽게 쉽게 이해하며 영화를 봤는데, 그 때문일까? 결말에서 드러나야 하는 반전이 영화 중간에 느껴져서 놀라움이 반감했다.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한 탓에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드러내며 아무도 예상 못 한 반전을 준다는 것은 정말 어렵구나 느꼈다.

 

 그림자 대신 그림자의 삶으로 들어간 진짜 주인공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의 부모가 맞는데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복제를 보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도 못 하겠다. 알아채지 못했을 때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바로 죽이지 않고 대화를 하려 했을까? 궁금함이 있었는데 본인보다 더 잘 아는 가짜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안겨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다. 그 행동을 그대로 현대사회에 적용해보면 자신보다 아래에 있던 사람이 자신을 짓밟고 자신의 위치에 올라가 행복하게 살았다. 이런 말이라 죄책감이란 말이 참 웃긴 말이긴 한데... 결과적으로 가짜가 이겼으니 '그래도 된다'를 말하려던 거겠지...

 

 영화 중반에 '그럼 이 집 차는 우리 거야?' 뭐 이런 뉘앙스로 얘기하던 장면이 있었는데 별 것 아닌 장면이지만 참 인상 깊었다. 그림자들은 주인공 가족(흑인 가족)을 부러워하며 뺏고 싶어 하는데 정작 그 가족은 백인 가족의 삶을 부러워하는 게 느껴져서 기분이 이상했다. 모두가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가질 수 있고 누구는 넘보지도 못한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모두가 평등을 주장하지만 제 발목을 잡으려 들면 기겁하며 싫어하겠지. 나와 관계없는 것들에만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 정말 웃기고 슬프다. 근데 나도 다를 바 없겠지...? 인간은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모순적일까? 이것 외에도 평소에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데 내가 죽기 전까진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현타 온다. 이럴 거면 정말 왜 사는 걸까... 매일매일 생각하게 만들어... ㅠㅠ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게 하나 있는데 인간이 복제 인간을 만드는 데 성공한 거면 실험자들의 복제 인간만 생기는 게 정상 아닌가? 어떻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플갱어가 생겨난 걸까? 이 영화에 그 과정은 필요 없다는 걸 아는데 어떻게 생겨난 건지 궁금하다. 감독의 디테일한 설정을 듣고 싶다.

 

<겟 아웃>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은데 난 두 작품 다 마음에 들었다. 반전이 뻔히 보이는 것은 안타까웠지만 딴짓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몰입력은 정말 최고여서 좋았다. 소재 자체도 마음에 들었고... 무섭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지만 말이다..ㅎㅎ...

 

 이 감독의 다음 작품까지는 기대하고 있을 것 같다! 재밌는 영화 만들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