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 스포일러 있음

 

 너무 책을 안 읽는 탓에 뭐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 구매했던 책이었다. 주변에서 한창 언급이 많았던 책이었고, 내용이 좋은지 드라마화도 돼서 한 번쯤은 읽어봐도 되겠다 싶었다. 가벼운 로맨스라 확실히 읽는 속도도 빨라 좋았다.

 직장 생활에 신물이 난 해원이 이모가 살고 있는 북현리에 장기 체류하게 되며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니라 해원이 북현리에서 놓고 간 것들(해이해진 친구관계, 가족들의 비밀, 자신의 미래 그리고 은섭)을 하나씩 찾아간다. 가장 궁금했던 게 해원이 연인인 은섭을 두고 다시 서울로 돌아갈까 였는데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가라는 말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결말이라 좋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을 믿는 나는, 연인과 자주 볼 수 없게 되면 그대로 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둘을 보면서 그것을 극복해야만 진정한 연애고 서로 더 멀리 보며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어릴 때만 연애를 해보고 커서는 연애를 안 해봐서 몰랐나 보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주변에 롱디도 많고 코로나로 인해 자주 안 보고, 못 보는 연인들이 참 많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만 바보였구나...!ㅎ

 책장을 편 순간부터 은섭과 해원이 이어질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초반부터 은섭의 생각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뭔가 스포아닌 스포를 당한 기분이었달까..? 적응하고 보니 파트가 끝날 때마다 나오는 은섭의 일지가 기다려졌다. 그 일지 덕에 더 가슴 설레며 읽었다.

 로맨스에 중점을 두고 읽었지만 더 기억에 남는 것은 해원과 보영의 이야기였다. 보영은 해원의 비밀을 친구들에게 폭로하고 그 일로 인해 해원은 삶을 포기할 생각까지한다.나같으면 죽을 때까지 용서 않고 변명 섞인 사과를 받을 것 같지도 않은데 해원은 달랐다. 초반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만나자는 보영의 말에 ‘날씨가 좋아지면 만나자’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해원의 이모가 언제가 날씨가 좋아지는 것이냐며 평생 만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며 말하는데 그 말에 해원은 마음을 고쳐먹고 보영을 만난다. 솔직히... 나 같으면 저 말을 듣고도 죽어도 안 만났을 것이다. 피해자는 난데 왜 만나줘야 하지? 만난 후 보영의 말도 짜증 났다. 처음엔 본인이 잘못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해원이 미워졌다라니... 애초에 잘못을 안 했으면 되는 거 아닌가? 미취학 아동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생각도 없이 남의 가정사를 퍼뜨린다? 그게 고의든 실든 남의 얘기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뱉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원은 용서했지만 난 보영을 아직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지 못한다 하여도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보영도 지 맘대로 하는데 나는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지...? 성인이란 참 어렵고 이해할 수 없다.

 보영이 짜증나는 것과 별개로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다’라는 문장을 읽으며 ‘우린 봄이 오기 전에’라는 곡이 떠올랐다. 곡 자체는 화자가 별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느낌이지만 3월도 4월도 아닌 추상적인 기한을 정해서 문자를 보내온 이의 말이 기억에 남아서 곡으로 썼다는 게 생각이 났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단 말은 사람 따라 편차가 크니 만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리지만, 봄이 오기 전에 만나자 라는 말은 벚꽃이 피기 전, 눈이 오는 날 각자 달라도 ‘봄’하면 떠오르지 않는 날씨면 언제든 만나러 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부담 없이 만나자는 말을 보낼 수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전에 빨리 날짜 잡자는 맥락이기도 하고... 둘 다 날씨에 관한 이야긴데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게 신기했다.

 겨울에 차갑게 식은 마음을 데리고 북현리에 온 해원이 차디찬 겨울을 견디고 단단해진 마음으로 서울에 다시 가서 내가 다 뿌듯하고 좋다. 그 해 겨울은 모두에게 여느 때와 다른 겨울로 느껴졌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해원만 성장한 게 아니라 모두가 성장하는 이야기... 내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이유가 앤의 성장과 로맨스가 담겨있어서도 있지만, 앤을 키우며 모두가 성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서 좋았던 게 떠올랐다.

 

 매해 겨울에만 북현리에 왔던 해원이 이제는 언제든 가고 싶을 때 북현리에 찾아갈 것 같다. 마음의 안식처 느낌이랄까... 난 시골 가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시골이 아니더라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장소가 생겨 제2의 고향처럼 자주 찾아가고 싶다.

 은섭의 일지에 나온 책들은 작가님이 이런 책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상상하며 적은 것이라던데 이별한 연인이 각자 여행을 하고 쓴 책이 인상깊었다. 이별하고 여행을 각자 한 건 이해가 가는데 둘이 모여 책까지 썼다...?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런 책이 나오면 책 내용보다는 둘의 미래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했을 것 같다. 여기가 할리우드인가 생각하며... 여러 가지로 재밌는 요소가 많은 책이었다.